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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형식

무상사에서는 숭산 선사의 가르침을 따르는 국제관음선의 전통과 동일하게
참선 수행의 방편으로 좌선, 염불, 절 수행, 공안 독참 (스승과 제자가 단둘이 앉아서 하는 선문답)을 모두 병행합니다.
이러한 단순한 수행법들을 통해서 순간순간 ‘오직 모를 뿐’, 즉 우리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수련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과 습관에 대한 집착을 순간순간 놔버리고, 뭔가를 할 때 ‘그저 할 뿐’일 수 있도록 하는 원리입니다.
몸을 통해 수행하는 형식이지만 그를 통해 마음 자리가 견고해지면,
나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들을 조절할 수 있게 됨은 물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이들도 도울 수 있습니다.

좌선

buddha

참선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접고 좌복 위에 반듯이 앉아서 명상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몸의 자세에 따라 분류할 때, 그것이 좌선의 형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 수행은 크게 보면 좌선만이 아닌, 절, 염불 수행을 비롯해 일상의 모든 활동이 포함됩니다.
그 말은 참선이란 몸의 자세보다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쓰느냐에 핵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몸과 마음의 우열을 두고 참선 수행을 한다면 그 또한 이상적인 참선 수행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마음에 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마음도 몸가짐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좌선, 절, 염불 등의 몸을 가지고 하는 수행방식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생겨났으며, 그러한 수행방식들을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깨닫고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좌선은 독특한 참선 수행의 한 방식이며, 역사적으로 여러가지 수행방식 가운데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왜 절 수행을 하나?
– 대봉선사 –

buddha

절 수행은 깨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주 빨리 몸을 굽히고 일어나는 단순한 동작을 통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게으름, 욕망, 분노 등의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 우리의 의식과 몸은 바로 하나로 기능하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수행전통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첫 번째 수행으로 모두 함께 108배 절을 합니다. 108배 수행은 매일 아침 하루의 활동을 앞두고 지난 실수에 대한 참회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108배를 하면서 우리의 몸과 의식이 빠르게 하나가 되고, 그러면 일과 중 부닥치는 여러 상황에 맑은 정신으로 옳게 대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절 수행은 생각이 너무 많고 마음이 산란하여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러서 참선, 특히 좌선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수행법입니다. 그러한 경우 앉아서 좌선을 하려 하면 의식을 제어할 수 없으므로 몸을 움직이는 수행법을 활용하면 더 좋은 효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활용하는 다양한 수행법들의 목적과 방향은 한가지입니다. 나의 ​​본성을 깨닫고 모든 중생을 괴로움에서 구하는 것이 바로 그 목적이고 방향인 것입니다.

절 수행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집착하는 ‘내 마음’, ‘나의 업’, ‘나의 견해’ 등을 다 내려 놓고, 청정한 나의 본성으로 돌아가 ‘이 순간에 밝게 깨어 있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청정한 본성을 바탕으로 모든 존재를 괴로움에서 구하고 싶다는 서원이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며, 특히 불상 앞에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며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처는 신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당신은 신입니까, 아니면 당신은 사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나는 깨어있다.”라고 답변하셨습니다.

왜 염불을 하는가?
– 숭산 선사 –

buddha

어느 날 한 선원에서 어느 제자가 숭산 선사께 물었다.
“우리는 왜 염불 수행을 하는 것입니까? 좌선 수행으로 충분치 않나요?”

숭산 선사가 답변하셨다.
“아주 중요한 점이다. 우리는 선원에서 다 함께 절하고, 염불하고, 좌선하고, 또 함께 먹고 다양한 일을 함께 하고 지낸다. 그렇게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우리 수행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른 업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승려이고 혹은 재가인 (일반인)이고, 어떤 이는 남성 혹은 여성이고, 어떤 이들은 학생이고 혹은 교수이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등, 성격, 직업 등 서로 다른 조건 (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중에 어떤 이들은 보통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지만 어떤 이들은 항상 문제를 스스로에게 또는 타인들에게 일으키며 살아간다. 문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내 생각이 옳다!’라는 마음을 뿌리 깊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각기 다른 견해들은 화합을 어렵게 만들고, 또 각자의 업을 더 강하게 키워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인마다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업을 보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 업이 삶을 어렵게 하는 업이라면 문제는 더 커지는 것이다.

염불이란 내 음성을 관하는 것이고, 함께 염불할 때는 함께 염불하는 소리를 관하는 것이다. 내 음성을 관한다는 것은 내 본성을 관하는 것이고, 함께 염불하는 소리를 관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본성을 관하는 것이다. 내 본성과 우리 모두의 본성과 온 우주의 본성은 원래 같은 것이다. 나와 소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 내가 소리가 되고 소리가 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니 혼자 염불할 때 혹은 함께 염불할 때, 그 소리를 관하면 우리 모두 온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내 생각’, ‘내 견해’, ‘내 감정’ 등 ‘나’라는 아집(에고)를 나 놓아버리는 것이 염불 수행의 목적이다. 그러면 거기에는 ‘좋은 업’ 또는 ‘나쁜 업’도 없고 우주와 하나가 되어 저절로 화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소리를 관하는 올바른 염불 수행을 꾸준히 하다 보면, 우리 마음이 맑은 거울처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춰 내어, 올바른 인간의 길을 터득하게도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염불 수행은 아주 중요한 수행법이다. 처음에는 잘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리를 관하며 꾸준히 염불 수행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 염불 수행은 참 즐거운 것이구나!’ 할 때가 올 것이다. 108배 절 수행과 같은 이치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왜 이런 절 수행을 하지?’라고 생각하며, 절 수행을 싫어한다. 절을 할 때, 우리는 부처님께 숭배하는 목적으로 절 하는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에게 절을 하는 것이다. ‘작은 나’가 ‘큰 나’에게 절 하는 것이다. ‘거짓된 나’가 ‘참 나’에게 절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절 수행을 하면, 그 순간 작은 나 (소아)가 큰 나 (대아)가 되는 것이다. 염불 수행도 그와 마찬가지 원리이다. 내 소리, 우리 모두의 소리를 관하여 나와 소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 나와 온 우주가 하나가 되고 소아가 대아가 되는 것이다. 내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모든 존재를 도울 수도 있게 된다.

제자는 감사드리며 절을 올렸다.

공안독참

buddha

선가에는 선문답이라는 독특한 수행법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선(참선)을 수행하는 수행자들간의 문답이라는 뜻입니다. 주로 스승이 제자의 수행이나 깨달음을 점검하기 위해 질문하고 제자가 답하는 것을 일컫는데, 때로는 제자가 스승의 선지 (진리에 대한 통찰 혹은 지혜)를 알고자 질문하고 스승이 답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지식이나 논리를 가지고 대하면 이해하기 힘들고, 말이 안되는 듯한 문답처럼 들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이유는 말이나 문자의 표면적인 의미보다는 그 이면의 ‘진짜 의미’를 요하는 질문들이기 때문입니다. 통찰과 직감 그리고 ‘맑은 마음’을 지녀야만 소화해 낼 수 있는 문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러한 선문답이 일정한 요소를 갖추며 형태를 갖춘 것이  ‘공안 독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일화나 역사적으로 선가에 잘 알려진 선사들의 깨달은 이야기 등을 가지고 스승과 제자가 단 둘이 앉아서 문답하는 형식입니다. 전통적으로 스승은 공안 독참을 통해 제자의 수행과 깨달음을 점검했습니다. 이러한 공안 독참은 선가의 수행방식들 중에서도 매우 독특하며 골수로 여겨집니다.

예로부터 한국의 선 수행 전통에는 수행자들의 공부를 점검해 보는 1,700 공안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숭산 선사는 서양으로 건너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1,700 공안 중 당신이 보시기에 아주 중요한 공안 10개를 선별해 이것을 10개의 관문 (후에 12관문으로 늘어남)으로 삼아 제자들의 수행을 점검하셨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숭산 선사는 더 많은 공안을 활용하셨고, 거기에 기독교 문구를 활용한 공안, 도교의 고전을 인용한 공안, 그리고 선사님 스스로 직접 만드신 공안들을 덧붙여 ‘세계일화 – 온 세상은 한 송이 꽃’이라는 제목의 공안집을 편찬하셨습니다. 전 세계 국제관음선승가에 소속된 모든 선원들에서는 선사나 지도법사의 자격이 있는 스승들이 그 공안집을 활용해 공안 수행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좌선

좌선

buddha

참선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접고 좌복 위에 반듯이 앉아서 명상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몸의 자세에 따라 분류할 때, 그것이 좌선의 형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 수행은 크게 보면 좌선만이 아닌, 절, 염불 수행을 비롯해 일상의 모든 활동이 포함됩니다.
그 말은 참선이란 몸의 자세보다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쓰느냐에 핵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몸과 마음의 우열을 두고 참선 수행을 한다면 그 또한 이상적인 참선 수행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마음에 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마음도 몸가짐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좌선, 절, 염불 등의 몸을 가지고 하는 수행방식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생겨났으며, 그러한 수행방식들을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깨닫고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좌선은 독특한 참선 수행의 한 방식이며, 역사적으로 여러가지 수행방식 가운데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왜 절 수행을 하나?
– 대봉선사 –

buddha

절 수행은 깨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주 빨리 몸을 굽히고 일어나는 단순한 동작을 통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게으름, 욕망, 분노 등의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 우리의 의식과 몸은 바로 하나로 기능하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수행전통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첫 번째 수행으로 모두 함께 108배 절을 합니다. 108배 수행은 매일 아침 하루의 활동을 앞두고 지난 실수에 대한 참회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108배를 하면서 우리의 몸과 의식이 빠르게 하나가 되고, 그러면 일과 중 부닥치는 여러 상황에 맑은 정신으로 옳게 대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절 수행은 생각이 너무 많고 마음이 산란하여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러서 참선, 특히 좌선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수행법입니다. 그러한 경우 앉아서 좌선을 하려 하면 의식을 제어할 수 없으므로 몸을 움직이는 수행법을 활용하면 더 좋은 효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활용하는 다양한 수행법들의 목적과 방향은 한가지입니다. 나의 ​​본성을 깨닫고 모든 중생을 괴로움에서 구하는 것이 바로 그 목적이고 방향인 것입니다.

절 수행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집착하는 ‘내 마음’, ‘나의 업’, ‘나의 견해’ 등을 다 내려 놓고, 청정한 나의 본성으로 돌아가 ‘이 순간에 밝게 깨어 있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청정한 본성을 바탕으로 모든 존재를 괴로움에서 구하고 싶다는 서원이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며, 특히 불상 앞에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며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처는 신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당신은 신입니까, 아니면 당신은 사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나는 깨어있다.”라고 답변하셨습니다.

염불

왜 염불을 하는가?
– 숭산 선사 –

buddha

어느 날 한 선원에서 어느 제자가 숭산 선사께 물었다.
“우리는 왜 염불 수행을 하는 것입니까? 좌선 수행으로 충분치 않나요?”

숭산 선사가 답변하셨다.
“아주 중요한 점이다. 우리는 선원에서 다 함께 절하고, 염불하고, 좌선하고, 또 함께 먹고 다양한 일을 함께 하고 지낸다. 그렇게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우리 수행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른 업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승려이고 혹은 재가인 (일반인)이고, 어떤 이는 남성 혹은 여성이고, 어떤 이들은 학생이고 혹은 교수이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등, 성격, 직업 등 서로 다른 조건 (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중에 어떤 이들은 보통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지만 어떤 이들은 항상 문제를 스스로에게 또는 타인들에게 일으키며 살아간다. 문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내 생각이 옳다!’라는 마음을 뿌리 깊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각기 다른 견해들은 화합을 어렵게 만들고, 또 각자의 업을 더 강하게 키워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인마다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업을 보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 업이 삶을 어렵게 하는 업이라면 문제는 더 커지는 것이다.

염불이란 내 음성을 관하는 것이고, 함께 염불할 때는 함께 염불하는 소리를 관하는 것이다. 내 음성을 관한다는 것은 내 본성을 관하는 것이고, 함께 염불하는 소리를 관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본성을 관하는 것이다. 내 본성과 우리 모두의 본성과 온 우주의 본성은 원래 같은 것이다. 나와 소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 내가 소리가 되고 소리가 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니 혼자 염불할 때 혹은 함께 염불할 때, 그 소리를 관하면 우리 모두 온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내 생각’, ‘내 견해’, ‘내 감정’ 등 ‘나’라는 아집(에고)를 나 놓아버리는 것이 염불 수행의 목적이다. 그러면 거기에는 ‘좋은 업’ 또는 ‘나쁜 업’도 없고 우주와 하나가 되어 저절로 화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소리를 관하는 올바른 염불 수행을 꾸준히 하다 보면, 우리 마음이 맑은 거울처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춰 내어, 올바른 인간의 길을 터득하게도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염불 수행은 아주 중요한 수행법이다. 처음에는 잘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리를 관하며 꾸준히 염불 수행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 염불 수행은 참 즐거운 것이구나!’ 할 때가 올 것이다. 108배 절 수행과 같은 이치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왜 이런 절 수행을 하지?’라고 생각하며, 절 수행을 싫어한다. 절을 할 때, 우리는 부처님께 숭배하는 목적으로 절 하는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에게 절을 하는 것이다. ‘작은 나’가 ‘큰 나’에게 절 하는 것이다. ‘거짓된 나’가 ‘참 나’에게 절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절 수행을 하면, 그 순간 작은 나 (소아)가 큰 나 (대아)가 되는 것이다. 염불 수행도 그와 마찬가지 원리이다. 내 소리, 우리 모두의 소리를 관하여 나와 소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 나와 온 우주가 하나가 되고 소아가 대아가 되는 것이다. 내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모든 존재를 도울 수도 있게 된다.

제자는 감사드리며 절을 올렸다.

공안독참

공안독참

buddha

선가에는 선문답이라는 독특한 수행법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선(참선)을 수행하는 수행자들간의 문답이라는 뜻입니다. 주로 스승이 제자의 수행이나 깨달음을 점검하기 위해 질문하고 제자가 답하는 것을 일컫는데, 때로는 제자가 스승의 선지 (진리에 대한 통찰 혹은 지혜)를 알고자 질문하고 스승이 답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지식이나 논리를 가지고 대하면 이해하기 힘들고, 말이 안되는 듯한 문답처럼 들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이유는 말이나 문자의 표면적인 의미보다는 그 이면의 ‘진짜 의미’를 요하는 질문들이기 때문입니다. 통찰과 직감 그리고 ‘맑은 마음’을 지녀야만 소화해 낼 수 있는 문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러한 선문답이 일정한 요소를 갖추며 형태를 갖춘 것이  ‘공안 독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일화나 역사적으로 선가에 잘 알려진 선사들의 깨달은 이야기 등을 가지고 스승과 제자가 단 둘이 앉아서 문답하는 형식입니다. 전통적으로 스승은 공안 독참을 통해 제자의 수행과 깨달음을 점검했습니다. 이러한 공안 독참은 선가의 수행방식들 중에서도 매우 독특하며 골수로 여겨집니다.

예로부터 한국의 선 수행 전통에는 수행자들의 공부를 점검해 보는 1,700 공안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숭산 선사는 서양으로 건너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1,700 공안 중 당신이 보시기에 아주 중요한 공안 10개를 선별해 이것을 10개의 관문 (후에 12관문으로 늘어남)으로 삼아 제자들의 수행을 점검하셨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숭산 선사는 더 많은 공안을 활용하셨고, 거기에 기독교 문구를 활용한 공안, 도교의 고전을 인용한 공안, 그리고 선사님 스스로 직접 만드신 공안들을 덧붙여 ‘세계일화 – 온 세상은 한 송이 꽃’이라는 제목의 공안집을 편찬하셨습니다. 전 세계 국제관음선승가에 소속된 모든 선원들에서는 선사나 지도법사의 자격이 있는 스승들이 그 공안집을 활용해 공안 수행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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