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 행원 대선사(1927~2004년)
숭산 대선사는 1927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 남북한의 이념이 대립하는 혼란기에 유소년기와 10대 후반 시절을 보내는 동안 정신적 갈등을 겪으며 성장을 합니다. 이 시기에 불교의 가르침을 만나 백일기도 후에 홀연히 마음이 열린 경험을 하신 이후, 마곡사에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습니다. 당대 선지식(禪知識)인 고봉 대선사를 만나 참선을 배우시고, 22세의 약관의 나이에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역대 조사(祖師)를 통해 전해 내려오는 불교의 심인법(心印法: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이치의 법)을 전승하였습니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을 마음의 법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선불교(禪佛敎)의 법맥을 잇는 제78대 조사시며, 한국 선사 중 처음으로 서양에 선불교를 전파하여 세계적인 국제 선불교 조직인 ‘국제관음선회’을 창건했습니다.
서양으로 건너가셔서 활동하시기 이전에는 국내에서 참선 수행지도는 물론 당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기강이 무너진 한국불교의 재정립을 위하여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부장 및 재무부장, 대한불교신문 설립 및 초대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불교 정화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승가대학 교육 실시 및 군승(軍僧)제도 설립 등을 통해 현대한국불교의 재정립에 일신하였습니다. 이후, 숭산 대선사께서는 1964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인 유골 처리와 관련한 인연을 통해 일본 정부의 후원을 받아 일본에 ‘홍법원(弘法院)’을 세우며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일본에서의 포교 활동은 1969년 홍콩 ‘홍법원‘ 개원으로 이어졌으며, 46세 되시던 1972년에는 서구 포교의 시발지인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평화운동 및 히피 사상 등이 널리 퍼져 있던 당시 미국 젊은이들의 참선에 대한 진지하고 순수한 열정과 미국 내에서의 여러 다른 불교 전통들의 난립을 두루 살펴보신 숭산 대선사는 서구 세계로 한국 선불교를 포교하시겠다는 큰 서원을 세웠습니다. 수년간 세탁기 수리 등의 일용직을 통해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참선을 배우기 위해 찾아드는 미국 젊은이들을 어떠한 조건 없이 가르쳤습니다. 이후 점점 제자들이 늘어나자 1972년 미국 로드아일래드(Rhode Island)주 프로비던스(Providence)에 처음으로 선원을 개원하였습니다.
이후 제자들과 더불어 활발한 전법 및 포교 활동을 통해 미국 전역에 선원(禪院)을 건립하였으며, 1978년 폴란드 바르샤바 선원을 시작으로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의 여러 국가와 브라질,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지역, 나아가 오스트레일리아와 남아프리카 및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에도 선원을 개원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세계일화, 온 세상은 한 송이 꽃‘임을 몸소 증명해 내는 삶이었습니다.
세계를 가로지르는 숭산 대선사의 드넓은 궤적의 바탕에는 ’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 ‘이라는 핵심사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불교 역사와 선불교에서 이는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던 가르침이었지만, 숭산 대선사께서는 그 가르침을 직접 깨닫고 현대인의 언어와 사고에 맞게 활용하여 세계 각지의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참된 본성에 눈뜰 수 있도록 가르쳤습니다.
입적(入寂)하기 약 10년 전부터 ’국제관음선회‘의 뿌리인 한국에 장차 세계 여러 나라의 제자들과 수행자들이 한국의 수행자들과 더불어 수행하며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수행처 건립을 추진하였습니다. 2000년에 세계적인 참선 수행처로 ’무상사(無上事)‘를 개원하시고 2004년 서울 화계사에서 제자들에 둘러싸여 입적(入寂)하였습니다.